본색173
개인의 삶이란 분류되지 않거나, 분류되지 못하는 영역들이 있다. 기타의 영역이며, 미지(未知)의 영역이기도 하고, 무지(無知)의 영역이기도 하다. 그것은 열정적인 사람들이 끊임없이 인생을 논의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지친 사람들이 절대적인 존재나 의견들에 자신을 의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개인의 삶이란 분류되지 않거나, 분류되지 못하는 영역들이 있다. 기타의 영역이며, 미지(未知)의 영역이기도 하고, 무지(無知)의 영역이기도 하다. 그것은 열정적인 사람들이 끊임없이 인생을 논의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지친 사람들이 절대적인 존재나 의견들에 자신을 의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인간의 위대함은 스스로의 규칙을 만드는 능력에 있다. 내적으로는 도덕률이요, 외적으로는 법규범이다. 인간의 사악함은 자신이 만든 규칙도 헌신짝처럼 내팽겨치는데 있다. 내적으로는 일탈이요, 외적으로는 반항이다. 그런 위대함과 사악함으로 한 인간이 구성되어 있다.
존재의 시작과 끝도 모르고, 자의에 의하든, 타의에 의하든, 영혼에 올가미를 쓰고, 씌우는 모든 인식은 불순하다.
자유의 본질은 모든 형식의 동행, 정의의 본질은 절차 참여의 확대, 진리의 본질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의 존중
'바보'들은 자신들이 뿌린 씨앗을 거두지 못하고, '위대한 바보'들은 제대로 씨를 뿌리지도 못하지만, 분명한건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누군가는 그 꽃을 피우게 할 것이다. 그런 희망을 남겨둔 이른바 '바보'들의 존재에 감사한다.
'육신의 존재'든, '영혼의 인식'이든 결국엔 소멸한다. 그러나 전자의 경우에는 그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더라도, 후자의 경우는 새로운 종자(種子)로 남는 것 같다. 그래서 어떤 종교에서는 '밀알'을 이야기 하고, 또 어떤 종교에서는 '식(識)'을 이야기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돌고 도는 것이라면 과연 이 세상에 새로운 것이라고는 어떤 것인지 궁금해진다. 어쩌면 '창조'란 아마도 '인식의 기만'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선택하는 자와 선택되는 자, 그 간격 만큼의 정의(正義)
천년의 길과 한순간이 무너지는데 걸리는 시간은 찰나!